티스토리 뷰

기차를 타고 16시간 동안 바라나시로 이동한 날이다. 그 유명한 인도 기차를 직접 타봤다. 바라나시에 도착한 후엔 어두워진  갠지스 강을 거닐었다. 생각해보니, 우연히도 이후에 여행한 자이살메르 사막 역시 밤의 모습부터 보게 되었다. 어떤 장소를 밤의 모습부터 마주하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낮의 모습을 모른 채 밤 그대로의 풍경을 편견 없이 보게한다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인도 여행 5일차, 바라나시 여행 1일차

0. 전날 밤 뉴델리역에서...

1. 16시간의 기차여행, 바라나시 도착!

2. 달빛 아래에서 갠지스 강가를 거닐다.



0. 전날 밤 뉴델리 역에서...


먼저 전날 저녁, 뉴델리 역에서 기차를 탈 때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IRTCT 어플로 내가 예매한 바라나시행 기차가 어느 플랫폼에서 출발하는지 확인하고 해당 플랫폼으로 가서 구석에 짱박혀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바닥에 짐과 함께 앉아있었다. 역시나, 나를 신기하게 여기는 시선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기차시간이 다다랐는데도 기차 털끝하나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옆에 앉아있던 인도 아저씨에게 내가 타는 기차명을 보여주며 이 기차가 여기로 들어오는 게 맞는지 물어봤다. 그 아저씨는 내가 찾는 기차가 아니라 다른 기차가 이 플랫폼으로 들어올 거라고 말했다. 

설마... 아닐 거야... 아저씨가 잘못알고 있는걸 거야...

플랫폼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로 다시 올라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한 인도 청년에게 내가 탈 기차 명을 보여주며 혹시 몇 번 플랫폼인지 아는지 물어봤다. 잘 모르겠단다. 흑. 기차 놓치고 거리에서 자게 될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 곧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여서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계속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아까 그 청년은 어느새 자리를 비웠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곧 아까 모르겠다고 한 청년이 멀리서 다급하게 나를 부르며, 내 플랫폼이 바뀌었다고 소리쳤다. 순간 상황파악 못한 나는 벙쪄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 청년은 내게 뛰어오더니 12번(아마도) 플랫폼을 가리키며 지금 당장 가야된다고, 이미 기차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반신반의한 상태로 일단 12번 플랫폼으로 뛰었다. 배낭이 무거워 속도를 못 내자 그 청년은 뒤에서 같이 뛰면서 "뛰어, 뛰어, 뛰어!!!" 코치까지 해줬다. 플랫폼으로 내려가기 전 뒤돌아 잠깐 눈인사만 하고 바로 기차로 뛰어들었다. 

그 청년 말이 맞았다. 기차 플랫폼이 바뀌었고, 인도 방송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기차에 부랴부랴 타느라고 그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게 아쉽고, 또 너무 고마웠다. 정말 신이 있다면 그날 밤은 신에게 그 청년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생각났으니 오늘도 이제 얼굴도 흐릿한 그 분의 건강을 빌며 잠들어야겠다...!

기차를 탈 때는 몇 번 플랫폼으로 가야하는지 미리미리 확인해야한다. 방송이 계속 나오기는 하나 알아듣기 힘드니, 미리 역 직원에게 확인하는 게 확실할 것이다.



1. 16시간의 기차여행, 바라나시 도착!


델리에서 바라나시 가는 기차에서, 어린 아기와 함께 탄 인도인 부부, 인도 청년 두 명, 사업가로 보이는 한 인도인 아저씨 한명과 같은 칸에 탔다. 다들 처음엔 자기 일행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그 중 한국과 인도의 종교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인도인 부부중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특히 호기심이 많았고, 인도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줬다.


침대를 펴고 자러 올라가기 전, 그들에게 종교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어떻게 다른지, 인도에 얼마나 많은 종교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인도부부 중 남편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도에는 힌두교, 이슬람교, 자인교 등 총 14개(12개였는지 확실하지 않다.)의 공인된 종교가 있다고 했다. 숫자에 놀라서 "어떻게 이 많은 종교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거야? 갈등이나 싸움은 없어?" 물었다. 그러니 인도남편은 자랑스럽게 인도인은 매우 평화롭고 서로의 종교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기억에 남았고, 이후 여행에서 받은 인상의 큰 부분을 결정했다. 

자연스럽게 이제 한국의 종교에 대해 물어보고, 내 종교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한국에는 개신교, 불교, 기독교 등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개신교야"라고 알려주니 매우 신기해했다. 아마 불교신자가 가장 많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고 좀 당황스러웠던 점은, 내가 종교가 없다고 이야기하니 이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난 "종교가 없어!"라고 쿨하게 말하니, 인도 부부중 남편은 당황하여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왜 없는지 물었다. 

뭔가 잘못 전달된 것 같아 "신을 믿는 것에 대해 반대하거나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냐~!;;;"라고 변명했다. 그래도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덧붙여서 나는 단순히 종교에 대해 깊은 생각을 안 해봤고, 관심이 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대화가 끊겼다...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종교가 있거나 만약 없다면,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 공부하고 가야지 인도인들과 더 재밌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 한 가지 팁은, 내가 예매한 기차 칸은 3A였는데, 현지 물가에 비교하면 가격이 있는 칸이었다. 그러다보니, 같이 탄 인도인들도 그 정도의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덜 노골적 이였고, 같이 있을 때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슬리퍼Sleeper칸이나 그 이하의 칸에 탔다면 같이 탄 인도인들로부터 꽤 다른 인상을 받았을것이다.

11일 저녁 6시쯤 출발한 기차가 원래 예정시간보다 5시간 지연되어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12일 오전 11시쯤이었다. 주로 안개 때문에 기차가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다고 한다. 

같은 칸의 인도 청년은 내게 어느 숙소에 묵는지 물어보더니 어떻게 가야할지 친절히 알려줬다. 뚝뚝이 기사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할지도 알려주며, 잘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안심시켜줬다. 관광지에서 보기 힘든 참 똑똑하고 예의 바른 인도 남성들을 만난 기차여행이었다. 



2. 달빛 아래에서 갠지스 강가를 거닐다.


뚝뚝이 기사가 짜이 사러간 사이에

 나한테 계속 다음날 투어 자기랑 하자고 영업하는 뚝뚝이 기사를 내가 못미덥게 여기며, 호스텔 앞까지 딱 내려줘야 한다고 계속 잔소리했다. 그런데도, 내려준 곳은 돌핀Dolphin호텔 앞이었다. 진짜 이상한 곳에 떨궈주는 경우가 있구나 생각했다. 여기 내가 예약한 곳 아니라고 예약한 호스텔로 가자고 하니, 계속 저 골목 뒤로 들어가면 나온다고만 한다. 

왠지 골목으로 들어가면 뚝뚝이 기사는 도망가고 호스텔은 없을 것 같은 의심에 진짜냐고 몇 번 물었다. 그러니 눈을 굴리며 짐까지 들어주고 골목길을 지나 호스텔 대문 앞까지 안내해줬다. 고마워요 뚝뚝이 기사님~. 오해했네. 뚝뚝이에서 내리기 전에 기사한테 짜이도 한잔 얻어먹고, 바라나시의 고스톱 GoStops(음?ㅋㅋ 어쩐지 이름이 익숙하더라) 호스텔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바라나시 고스톱GoStop 호스텔 전경. 돌핀호텔 뒤에 위치한다.

체크인하기까지 오래 기다려야했다. 여기 스탭들이 너무 친절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처리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기다리는 동안 담배 태우고있던 한 핀란드 친구와 이야기했다. 굉장히 잘생기고 또 내성적으로 보이는 친구였는데, 한국영화와 한 영화감독에 대한 서로 이해 불가능한 대화를 나눴다. 아직도 그 친구가 박찬욱 감독을 직접 만났다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체크인을 한 후에는 밀린 빨래도 하고 씻으며 잠시 쉬었다. 온수기가 안 켜져서 사방팔방 물어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같은 룸을 쓰던 미국친구 두 명은 온수기 쓰는 법을 알려주면서 온수기를 틀어도 찬물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아니야 너네 틀렸어...

그 중 한명이 꼭 영화 속에 나오는 과학천재처럼 생겨서 물어봤는데... 스탭에게 물어보니 당시에 전기가 끊기는 시간이라고 좀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여튼 이리저리 물어보던 중 중국인 친구 리Li도 사귀었다.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인도로 들어온 친구였다. 별 계획이 없던 친구라 유심 플랜 추가하러 보다폰Vodafone 대리점도 데려가고, 저녁때는 바라나시 강가를 함께 구경 갔다. 어두워진 후에 나가기 망설여졌는데, 이 친구 덕에 나가봤다. 

갠지스강가에 가던 중 만난 소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 가면 가트Ghat라는 여러 구역이 있다. 고스톱호스텔에서 가장 가까운 가트까지는 걸어서 10분밖에 안 걸렸다. 

가트에 닿으려면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야되는데 강가 방향으로만 쭉 들어가면 쉽게 가트에 닿을 수 있다. 반대로 가트에서 시내로도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밤 갠지스 강가의 모습

처음 가트에 도착했을 땐 '밤이라 강가가 많이 조용하고 한적하구나' 생각하고 리와  강을 따라 위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사람으로 붐비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처음과 다르게 세레머니와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매우 붐비고 화려했다. 매일 저녁이후에 이뤄지는 망자를 위한 의식이라고 한다.

매일 밤 갠지스강가에서 이뤄지는 의식.

세레머니가 이뤄지는 장소를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인파에서 벗어나 세레머니가 이뤄지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이제 좀 평화롭구나' 느끼고 있는데, 역시나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한 인도상인이 연지곤지같은걸 들고 오더니 "행운을 위해, 신이 축복하시길" 대사를 읊조리며 내 얼굴에 칠하려는 흉내를 낸다. 분명히 돈을 요구할 것 같아서 피했더니 "괜찮아, 괜찮아" 연신 말한다. 

분위기에 휩싸여, 빈디(눈썹 사이에 그리는 붉은 점)를 찍었다. 그랬더니 몇 십 루피를 달라고 이젠 끈질기게 독촉한다. '하 이럴 줄 알았어' 난 절대 주지 않을 거라고 얘기하고 버텼다. 그러나 나의 행운을 위한 건데 달라고 고집이었다. 이때 같이 있던 리가 명언을 날렸다. 

"행운은 돈에관한 게 아니야." "Luck is not about money."

오... 그 친구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어쩜 저리 옳고 멋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이 말을 듣던 인도 상인도 곧 자리를 떴다. 리 덕에 벗어났다. 

빈디 찍고 한 컷

호스텔에 도착해서 또 한 컷

갠지스 강가를 떠나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스탭들에게 강가에서 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일렀다. 빈디 찍는데 원래 몇십 루피 내야 되냐, 그 상인 정말 끈질겼다,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니 관련해서 팁을 줬다.

현지인들은 빈디를 찍는데 아예 돈을 안내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내봐야 1루피 정도만 지불한다고 한다. 

밤이되자 날씨가 쌀쌀했다. 리가 중국에서 가져온 차를 꺼내 끓여줬다. 그리고 일상, 직장, 연애 등 20대 후반의 여자로서 가지는 공통된 주제로 긴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문화, 언어, 국가를 가져도 얼마나 고민이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른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중국 정치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캐물었다. 처음엔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하지만 곧 중국 사람들이 실제로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본인의 감정은 어떤지 솔직하게 이야기 해줬는데, 정말 흥미로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나눴던 밤이다. 



 다음 날 여행기!

2018/04/18 - [직감적 여행/인도 북부 (2018. 01)] - [퇴사하고 떠나는 여자혼자 인도여행 6일차] 바라나시 근교 싸나쓰 Sarnarth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