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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사막의 밤을 경험한 후, 다음날 생각보다 조금 늦게 사막투어에 나섰다. 친절한 호텔 주인 포테가 강력 추천한대로 가이드 한 명을 고용하여 프라이빗 사막투어를 했는데, 물론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포테를 믿고, 이렇게 추천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인도 여행 10일차, 자이살메르 여행 3일차
1. 예측 불가능한 인도 사람들 이야기
2. 짜파티의 향연
3. 쏟아질 듯한 별 아래에서 느낀 공포
1. 예측 불가능한 인도 사람들 이야기
전날 밤 사막에 너무 늦게까지 묵은 탓인지, 1박 2일의 사막 투어가 예정되어있던 날 늦잠을 자버렸다. 혹시 못가려나, ... (사실 걱정이 앞서 못갔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 늦춰서 출발하기로 포테가 시간 변경을 도와줬다. 포테와 호텔 직원들은 내가 사막에 가서 먹을 음식, 필요한 용품들을 준비해줬다.
준비를 마치고 나와 매우 우 친해진 호텔 스태프인 소랍Sorab이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날 데려다줬다. 약 2-30분간 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갔다. 그 사이 소랍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다. 그동안 기회가 없어 못 물어봤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델리, 바라나시에서 만난 인도 사람들은 인도 총리 모디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였다. 그래서 모디 총리가 신임이 깊고, 인기가 많구나 생각했는데, 소랍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사막 사람들이 그의 정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고, 이로 인해 총리의 존재가 필요 없다고 했다. 매우 흥미로웠다.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연애, 결혼으로 흘러갔는데, 내가 미혼이고 싱글인 걸 알려주자, 본인의 결혼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줬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워서 재차 물었던 게 기억난다. 다른 사막지역의 사람들이 그렇듯 본인도 부모님, 가족의 의견에 따라 결혼했다. 하지만 아내와 맞지 않아 함께 살 수 없었고, 현재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따로 살고있다고 한했다. 그럼, 이혼을 한 것이냐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었다. 이혼하기 어렵다고만 했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되서 미간까지 찌푸리며 생각하고, 재차 물어봤던 것 같다.
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행 중 만난 인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가던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 사막에서 포테와 소랍이 들려준 이야기, 그들이 영위하는 삶의 모습은 너무 달랐다.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인도 북부, 라자스탄 지역 내에서도 이렇게 다른데 다른 지역까지 여행하면 그 차이가 얼마나 확연할까?" 이렇게 인도의 다양성, 무궁무진함을 깨닫고 그 매력, 예측 불가능함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 같다.
2. 짜파티의 향연
얼마 안 지나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사막의 따가운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모자나 스카프를 준비 못해서, 소랍의 스카프를 빌리기로 했다. (정말 유용하게 쓰였다. 사막에 갈 때는 머리를 가릴 수 있는 모자나 스카프를 꼭 준비해야 한다.) 소랍과 가이드는 잠시 인사를 하더니 차로 실어온 음식을 낙타로 옮겼다.
곧 소랍은 떠났고, 가이드와 잠시 인사를 한 후 낙타에 올라타 사막 여행을 시작했다. 가이드는 말수가 별로 없었다. 덕분에 평화롭고 조용한 사막 투어가 진행되었다.
낙타는 듣던 대로 계속 타니 엉덩이가 아팠다. 생각했던 것 만큼 많이 아프진 않았으나, 그래도 엉덩이랑 사타구니 쪽에 통증이 생겼다. 낙타는 이전에 타본 적도 자주 본 적도 없는 동물이라 관찰하는 것 만으로도 신기했다. 일단 침을 많이 흘렸다. '아픈 건가?' 그리고 혓바닥에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릴 수 있었다. 처음에 봤을 땐 정말 충격적 이였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에 남는 건, 이성 낙타가 지나가면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다가가서, 가이드가 열심히 되돌려 놨어야 했다는 거다. '짜식들...'
초반에는 딱딱한 모래 사막을 계속해서 지나갔다. 내가 기대하던 모습은 모래언덕으로 이뤄진 사막의 모습이었다. 언제 나오나 한참 기다리니 기다리던 장면이 등장했다. 마치 바다같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막 모래언덕의 모습.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움에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가이드는 모래언덕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불을 폈다. 그 곳이 바로 그날 밤 묵을 장소였다. 사막 투어로 자주 오는 장소인지 이미 침구류들이 한쪽에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옆으로는 다른 가이드와 방문한 여행객들이 종종 지나갔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사막 언덕에 도착하기 전에도 한 번 가이드가 짜파티를 요리해줬고, 도착해서도 곧 짜파티 저녁 식사를 만들어줬다. 점점 짜파티가 마치 쌀밥처럼 익숙해졌던 것 같다. 지금 떠올리니 당시에 먹었던 짜파티가 너무 그립다. 모래가 묻어있는, 위생 상태를 전혀 알 수 없는 요리였지만, 그때는 열심히 먹었고, 꽤 즐겼다. 그리고 짜파티 이후에 당연하게 끓여주는 짜이도 좋았다.
다음 날 모래언덕에서 벗어나 도심 쪽으로 향할 때도 계속해서 짜파티를 요리해줬는데, 그때는 "왜 한 가지만 요리해주지...? 다른 메뉴는 없나?"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그때 물리도록 먹었던 짜파티와 야채, 치킨커리가 먹고 싶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불을 지피고, 손수 구워주던 짜파티,... 커리,... 짜이까지
3. 쏟아질 듯한 별 아래에서 느낀 공포
식사를 하고 모래언덕을 이리저리 다니며 구경했다. 한껏 분위기 잡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보낼 엽서도 쓰고, 일기도 썼다. 석양을 바라보며 썼는데, 금방 해가 졌다. 아주 멀리서 사막 투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와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이드는 내가 춥지 않도록 모닥불을 지폈다.
중간에 어젯밤에 만난 포테의 친구도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는 얼굴을 만나니 반가웠다. 그때 마침 내 가이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 때였는데, 본인이 끓인 짜이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곧 내 가이드가 다시 돌아왔는데, 둘은 둘만의 언어로 낄낄거리고 떠들었다. 묘하게 기분이 안좋았다. 포테의 친구는 조금 있다 돌아갔고, 다신 안왔다...(응?)
가이드는 저녁식사로 또다시 짜파티와 야채커리를 요리해줬다. 정말 계속해서 짜파티와 야채커리만 먹었지만 질리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가이드는 내게 같이 사막 어두운 쪽을 탐험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물론 같이 나가서 이곳 저곳 볼 수도 있었지만, 아까부터 이 사람이 풍기는 기운이 좋지 않았다. 난 거절하고, 혼자 보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여전히 어둠 속의 사막은 정말 무서웠다. 모닥불에서 몇십 미터 떨어지자 사막은 시꺼멓게 변해서, 도저히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리게 하는 공포감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두 세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그게 다였다. 혼자서 더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닥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면 혼자 사막 속으로 걸어가기 직전에 가이드가 음흉한 속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 모닥불 옆에서 짜이를 마시는데 갑자기 자이살메르가 마사지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낙타 마사지camel massage'라는 낙타 마사지가 있는데, 낙타를 기르는 곳에서 낙타를 대상으로 하는 마사지라고 그럴듯하게 꾸며냈다.
처음에 낙타를 기르는 장소, 그곳에서 하는 마사지에 대해 해주는 이야기는 의심없이 믿었다. '그런것도 있구나...' 왜냐면 너무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ㅋㅋㅋ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보고 그 마사지를 받아보고 싶냐고 물었다. '응...?ㅋㅋㅋㅋㅋㅋㅋ 미쳤니?' 괜찮다고 하자 몇 번 더 권유했다. 너무 얼탱이가 없고, 얘가 어디까지가나 보고싶어 말했다. 사실 얘의 말이 정말 순수하고 진심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왜냐면 그날 밤을 같이 지내야하는 사람, 사실 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깨만 마사지해봐' 그러더니 어깨 마사지를 시작했다. 언제든지 멈추게 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어떻게 하나 지켜봤다. 그런데 곧 손이 허리 쪽으로 내려갔고, 옷을 슬쩍 걷더니 손을 넣어 허리를 마사지하려 했다.
바로 그만하라고 저지하고 좀 떨어져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사막 구경가지 않겠냐고 물어봐서 괜찮다고 하고 혼자 걸어 나온 것이었다. 너무 기분이 안 좋았다. 그 밤이 엄청 길어지겠구나 직감했다. 지금 회상하면서 글을 쓰는데도 너무 빡치고 화가 난다.
더 이상 어두컴컴한 사막 속에서 헤맬 수 없어서, 다시 모닥불로 돌아갔다. 아오 더 빡치는 장면이 눈 앞에 있었다... 잘 자리를 깔아 놨는데, 본인 자리 바로 옆에 내 자리를 깔아 놓은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난 저 간이 침대 끌어다가 저쪽에서 잘게' 말하고 최대한 떨어져서 내 자리를 폈다. 침대 위에 내 침낭을 펴고, 그 위에 이불을 덮고 추위에 단단히 준비했다.
그 친구는 뻔뻔하게 왜 자기가 깐 자리에 눕지 않냐, 모닥불에서 너무 떨어지면 춥다 말했다. 난 그냥 저 간이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말하고 바로 침낭에 들어가 누웠다. 하늘에 별이 참 많았다. 가이드 말대로 별똥별도 떨어졌다. 근데 마음이 너무 불편해 오롯이 즐길 수 없었다. 눈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도, 사실 신경쓰이는 건 멀찍이 떨어져있는 가이드였다.
잠들기 전까지 세네개의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가이드가 잠 든 걸 확인하고 나도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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